예전에 불교에 심취해가던 시절에
세상 어느 곳으로도 도망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난감하였다.
도를 이루겠다는 생각보다는 도망갈 곳이 없다는 것이 얼마나 황당한 것인가?
내일, 아니 지금 죽어도 도망갈 곳이 없다는 것,
죽어도 끝이 나지 않는다는 것
죽어도 도망가지 못한다는 것
그것은 실로 엄청난 충격이었다.
충격은 충격이고
도망갈 곳 없으니 부딛혀야만 하니
불교의 계율은 너무 골아파서 다 지킬 수가 없는 것이다.
출가해서 중되는 일 외엔 할 일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큰스님에게 물었다.
스님(김고산, 김서산), 어떻게 살아야합니까?
무엇을 기준으로 살아야 합니까? 하니
세속오계를 기준으로 살아라. 하신다.
세속오계
사군이충, 사친이효, 붕우유신, 임전무퇴, 살생유택
그 당시 이 말은 상당히 걸림이 많은 말이었다.
나라도 지켜야하고
부모도 모셔야하고
친구도 사귀어야하고
전쟁도 해야하고
살생도 해야한다니
순수 불교를 지향하는 나로서는 정말 수용하기 힘든 내용이었다.
그래서 알았습니다. 하고는 잊어버렸다.
그런데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이보다 더 간단하고 확실하게 정립된 것이 없는 듯하다.
특힌 중요한 것은
세속오계에 불교에 대한 이야기가 없다는 것이다.
분명 불교에서 나온 내용임을 알겠는데
불교에 대한 것은 살생유택이라는 것 하나 있다.
이것은 왜일까?
그래서 검색해보니 이렇게 나와 있다.
세속오계
신라 진평왕 때 원광법사(圓光法師)가 실생활의 윤리로서 제시한 5가지 교훈. |
① 사군이충(事君以忠):임금(국가)에 충성을 다할 것,
② 사친이효(事親以孝):부모에 효도를 다할 것,
③ 교우이신(交友以信):신의로써 벗을 사귈 것,
④ 임전무퇴(臨戰無退):전쟁터에 나아가서는 물러남이 없을 것,
⑤ 살생유택(殺生有擇):함부로 살생을 하지 말 것 등이다.
귀산(貴山)과 추항(
![]() 원광 자신이 말하고 있듯이
이는 불도를 엄격히 따를 수 없는 세속생활의 처지를 고려하여 제시된 것이므로
승려들이 지켜야 하는 보살계(菩薩戒)와는 달리 세속오계라 했다.
이러한 덕목은 원광이 겪은 체험을 바탕으로 한 것으로서,
충·효·신 등을 가르치는 유교 정신과 상치되지 않도록 불교 정신을 생활에 적용한 교훈이다.
이 중 임전무퇴나 살생유택은 불교의 윤리관과 어울리지 않는 듯하지만,
원광이 중국에서 배웠다고 하는 〈열반경 涅槃經〉에
"불법을 수호하는 사람은 칼과 활을 들고 비구를 수호해야 한다",
"국왕·대신·신자들이 불법을 지키기 위해서 칼과 창을 지니는 것은 결코 파계가 아니다"라고
설한 예가 있어, 세속오계도 이에 바탕을 둔 듯하다.
세속오계는 당시 사회에 필요한 덕목이었다.
가령 충(忠)은 왕권을 중심으로 한 중앙집권적인 국가체제 형성에 부응하는 것이고,
효(孝)는 가부장적인 가족제도의 발달에 따르는 것이며,
신(信)은 화랑도와 같은 집단생활에 필요한 것이고,
임전무퇴는 정복전쟁의 수행에서 필수적인 것이다.
또 살생유택에 대해 "여섯 재계일(齋戒日)과 봄·여름에는 죽이지 말며,
가축을 죽이지 말고, 소용되는 것만 죽인다"고 하여
가축을 강조한 것으로 보아 사유재산제의 발달을 배경으로 했을 것이다.
|
이러한 설명이 있다.
그런데 지금 내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은 바로 이러한 것들이다.
아니 우리가 이 시대를 살면서
서로의 행복을 지키는 방법은
이 세속오계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은가 십다.
특히 마음에 들어오는 것은
불교를 내세우지 않고도 불법을 잘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불교의 중심은 중도다.
중도는
가정의 정립을 필요로한다.
사회의 정립을 필요로한다.
국가의 정립을 필요로한다.
생존하여야한다.
이것이 충족되는 자신의정립을 필요로한다.
정말 대단한 우리의 선조들이다.
정말 존경스러운 조상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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