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식과 수련

진아, 자아, 가아

imita 2006. 9. 4. 21:15

흐, 진아, 자아, 가아

 

사람들과 이야기 하면서

일차적인 자아완성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 행복의 길이라고 이야기 하였다.

그러면 지금의 의식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이 생긴다.

 

사람의 의식을 의식, 전의식, 무의식으로 나누는 것이 심리학적 방법이라면

진아와 가아로 나누는 것이 불교적인 방법이라 할 수 있다.

그러면 자아란 무엇인가?

진아인가?

가아인가?

 

진아란 우리의 순수의식, 일체와 하나라고 하는 순수의식을 말한다.

가아란 순수의식과 괴리된 체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현재의식들을 말한다.

그러면 사람들이 말하는 자아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우리가 학창시절 참된삶의 길은 자아완성의 길이라 하였고,

직업이나, 예술 등이 자아완성을 위한 것이라 배웠는데

진즉 자아가 무엇인지 말하기 어렵다.

해서 사전을 찾아본다.

 

국어사전에는 다음과 같이 나와 있다.

 

 

정신분석이론에서 '자기' 또는 '나'로서 경험되며 지각을 통해 외부세계와 접촉하는 인간성격의 일부분.
 
다음 백과사전에는 다음과 같이 나와 있다.
자아[自我, ego]
 
[개요]

자아는 기억·평가·계획하고 여러 방식으로 주변의 물리적·사회적 세계에 반응하며 그 속에서 행동하는 부분이다. 정식분석이론에서 자아는 지크문트 프로이트가 인간 정신의 역동을 설명하려는 시도에서 제시한 3가지 요인의 하나로서, 이드·초자아와 공존한다. 프로이트의 용어에 따르면 자아(Ego:라틴어로 '나'라는 뜻)는 성격을 실행하는 기능을 하며 이드초자아의 통합자이자 외부세계와 내부세계의 통합자이다. 자아는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과거의 사건과 현재의 행위 및 기대와 상상 속에 나타나는 미래의 행위와 관련된 개인적 준거를 제공함으로써 행동에 지속성과 항상성을 부여한다. 신체 개념은 자신의 초기 경험이 중심이 되지만 자아는 성격이나 신체와 공존하는 것은 아니다. 발달된 자아는 특히 위협·질병 및 생활환경의 변화 등으로 인해 전생애에 걸쳐 변화할 수 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자기 자신 대한 의식이나 관념 이르는 로 행동의 주체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신의 관념이나 자싡의 마음이 어떠한 것인지 잘 모른다.
결혼을 할 때도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인지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이 있고,
아니 어쩌면 자신이 진정으로 원한다고 하면서도 다음에슨 속았다고 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이 지금 현재의 선택이라고 확신하면서도 다음에는 아니라고하기도 하고,
신중한 사람들은 자신이 정말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선택하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내 속에는 나 아닌 나가 또 있다.
지금 현재의 나가 하나의 나라면, 그 속에 또하나의 나가 있다.
여기서 현재의나를 지배하는 것과
그 속에서 바라보고 있는 나가 하나 있다는 것인데
여기서 어느 것이 나의 자아라고 할 것인지
아니면 둘다 나의 자아라고 할 것인지
헷갈린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에게
이 둘을 나누어서 이야기 한다.
 
내 속에서 지금의 나의 행동을 바라보면서
지금 행동하는 나의 결과들을 흡족해하거나 흡족해 하지 않는 나에 의해서
행복과 불행이 나누어 지므로 이를 자아라고 이름 한다.
그리고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순간 순간 행동하는 나를 가아라고 표현한다.
 
우리 식으로 표현한다면 행복과 불행을 나누는 마음을 자신의 속마음으로 표현하면 좋겠고
그리고 평상시 행동하고 표현하는 겉마음을 가아라고 표현한다면 좋겠다.

 

표현이야 어떠하던,

나의 마음을 진아, 자아, 가아로 구분해보면

자아완성이라는 것이 눈에 밟힌다.

그러면 버려야 하는 마음이 눈에 밟히고,

자아를 회복한 후에야

자아의 자아인 진아를 회복할 수 있다.

 

끝없는 자아완성의 길에서

끝에서 만나는 것이 진아인 것이다.

 

진아를 찾아가는 사람들이

자아를 무시한 체

자아를 완전히 무시한 체

 

진아를 향하여 가는 사람들은

진아에 도달하기 전에 허무에 도달한다.

진아에 도달하기 전에 혼돈에 도달한다.

진아에 도달하기 전에 괴로움에 도달한다.

진아에 도달하기 전에 고독에 도달한다.

모든 것을 비웠다는 그 순간에도 지복을 경험하기 어렵다.

 

자아를 무시한 사람들은 이 허무와 괴로움 혼돈 고독에서 벗어나려면

상당한 수련 내지는 스승의 이끌음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자신의 자아를 충족시켜가면서 가는 이는

가는 길이 즐거우며

허무와 고독과 혼돈고하 고독에 도달하지 않고

사랑과 자비와 행복과 영광에 도달하게 되고

비움이 비움이 더욱 행복으로 다가가 결국 지복으로 가게 된다.

아무런 복됨이 없어도 아무런 고통이 없기에 지복이라 하여도 불만이 없다.

 

 

자신의 성숙을 위하여 발길을 재촉하는 사람이 있다면

모름지기 자신이 인간으로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하고

그것을 어떻게 이루어 가는 지를 알아야 하고

그것의 연장선상에서 도를 만나야

도를 닦는 마음이 괴롭지 않은 것이다.

도를 닦는 것이 즐거운 것이다.

 

억지로 도에 자신을 끼워 맞추지 말고

자신이 가는 길이 도가 되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헤, 너무 어렵나?

쉬운 일은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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