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식과 수련

해소라는 것과 정화

imita 2006. 7. 6. 14:19

우리의 마음 속에 있는 고통이 사라지는 경우를 살펴보자

친구와 싸웠을 때

서로 잘못을 인정하고 서로 용서하고, 남은 상처를 함께 치료해야만 완전히 해소되고

싸운 연후에 원인을 각자 자신에게서 찾아보고 자신이 미처 생각지도 못한 원인을 발견하고

그것을 인정하며, 함께 고쳐나갈 때는 전보다 더욱 친한 친구가 된다.

그리하여 서로간의 마음의 벽을 싸움을 통하여 해소하는 것이고,

많이 싸운 친구들이 더 마음의 벽이 없고, 더 많이 이해하는 친구가 되는 것이다.

전쟁터에서 적장을 서로 존중하면서 싸운 예는 전쟁사에서 자주 볼 수 있다.

 

내 마음 속에 있는 문제들은 내가 이해하지 못하면 사라지지 않는다.

무조건 적인 용서와 사랑이 해결할 수 있는 듯하지만 그것으로 되는 경우는 아주 작다.

그렇게 되는 사람은 마음의 고통도 없을 것이다.

마음에 고통이 있는 사람은 자신의 내면에 있는 문제를 객관적으로 쳐다볼 줄 알아야 한다.

그것이 자신의 오해에서 시작되었는지

자기방어를 위해서 그렇게 되었는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그렇게되었는지

....

 

그 속에서 나의 잘못(관점)과 상대의 잘못(관점)을 잘 살펴보고 이해하고 용서하고 사랑하는 과정을 거쳐서 완전히 마음에서 용납이 되는 것이 곧 소화가 되는 것이요, 해소가 되는 것이요, 정화가 되는 것이다.

완전한 이해를 거듭하다가 보면 내 속에서 올라오는 번뇌, 고통의 중심들이 드러난다.

불가에서 이것을 추번뇌라 한다. 끈뿌리라고 보면 되겠다.

이 추번뇌를 위의 과정을 거쳐서 제거하고 나면

잔뿌리들이 나온다. 미세하게 바람에 흔들리듯이 왔다가 사라지는 번뇌들

그것이 불가에서 이야기하는 세번뇌이다.

 

이것은 사람들과 사회에 대한 이해가 충분히 되고

그들을 존중하고 스스로를 존중하게 되면 차분하게 사라져간다.

 

그리고는 마음이 고요해지면서 든든해진다.

이유는 흔들리는 마음들이 사라졌기에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는 과정이 세번뇌에 해당한다고 보여지며

잎새에 부는 바람이라는 바람이 사라짐으로서 괴로워할 이유도 사라진다.

혹은 잎새가 사라짐으로 바람이 불어도 흔들림이 없다고 할 수 있으나,

태풍이 불어도 잎새는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

 

여기서 살펴보는 것은 시비분별을 하는 것과는 다르고

관한다는 표현이 더욱 어울린다.

 

우리가 버린다. 비운다. 정화한다고 하는 데

이 표현을 해소한다, 푼다 라고 보면 좀더 가깝다.

 

우리는 의식을 정화라고 하기보다는 정리하고 청소를 한 후에

정리되어 있는 것도 필요없음을 느끼고 하나씩 버려나가는 것이 좋다.

무작정 버리다 보면 뿌리는 두고, 둥치만 잘라버리는 오류를 범하기 쉬우며

종래에는 자기가 무엇을 위하여 무엇을 하고 있는 지 조차 모르게 된다.

속은 속대로 겉은 겉대로 놀게된다.

 

해서 하나의 잎새를 통하여 가지를 잡고

가지를 잡고서 덩치를 잡고

덩치를 잡고서 뿌리를 잡는 것이다.

 

그 뿌리가 너무 커서 뽑아낼 수 없을 때

우리는 기도하고, 스승을 찾아서 도움을 청하고, 도반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이다.

그리고 혼자서 할 때는 에너지를 빌려와서 하기도 한다.

나를 이기기 위해서 선인들의 에너지를 빌리는 것이다.

예를 들면, 염불, 만트라 기도 등이 여기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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