흠.
8년에 대한 보상이란 것이 어느 일방의 것은 아닐지라.
그래도 한국의 남자는 여자에겐 죄인이요, 빗장이 일 수 밖에 없다.
그 옛날 여자가 노예처럼 대접받은 것에 대한 시대의 반전에 의한 것이니,
모두 조상탓이라 할 것이요,
외국의 문물이 이 땅에 들어오면서 생긴 혼란에서라 생각된다.
짝지의 보상이란 명분으로 마음으로부터 모든 것을 놓으려는 의지가 느껴졌다.
짝지의 인식이 그러하던 그러하지 않던 나는 그러하리라 한다.
며칠전 모 단체에 가서 마음쓰는 법을 배우고자 한다고 했다.
처음에는 극렬하게(강하게) 반대를 했다.
이유는 여러가지 있었다.
하나는 또 어딘가에 가서 배우려고 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 어떤 단체에 속하는 거부감이었다.
자신의 내면 속에서 모든 것을 끌어낼 수 있는 사람이 남에게 의존하는 것이 싫었다.
하나는 지금 일어나고 있는 변화의 흐름에서 영향을 받는 것이 싫었고,
긍정적으로 변한 것에 대한 오해, 그곳에서 배워서, 그것의 힘으로 라는 인식, 오해가 싫었다.
하나는 나가 말하는 것들을 그곳에서 또 들을 것이고
여태껏 해온 나의 이야기가 무시되는 것이 싫었다.
그리고 나의 짝이 누군가의 안내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싫었다.
하나는 가족간에 일어날 수 있는 불화의 원인이 될 수 있기에 싫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싫었고, 가지마라, 왜, 싫다라고 했다.
그리고는 다음날 아침 이게 웬일
가라란 말이 튀어나온다.
마음 속에서부터 한점 그스럼없이 지난 밤의 거부감이 모두 사라졌다.
짝지가 원하는 마음
짝지가 해결하고자 하는 것과 해결 후의 긍정만 남고 모두 사라졌다.
나 자신의 문제에 의한 거부감은 모두 사라졌다.
오직 짝지의 입장에서만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정말 긍정적으로 원하는 바를 행하고 이루기를 희망했다.
예전에 어떤 때 처럼 입으로는 마지못해 하고, 마음은 언짠은 상태가 아니었다.
그렇게 됨과 동시에
나의 미래에 대한 계획, 욕구, 희망, 꿈들이 모두 놓아졌다.
강한 욕구는 한점 없이 사라져버렸다.
그렇다고 무기력해진 것은 아니었다.
그냥 평온해졌다.
예전에 어떤 때처럼 들뜨지도않았고, 벅차지도 않으며, 붕뜨지도 않고서
그냥 있는 그대로의 짝지를 바라보고
있는 그대로의 나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앞의 글에 적힌 내용의 일부가 내재되면서
지혜런 것이 예전에 알던 지혜(문제에 막힘이 없고, 원하는 바를 행할 수 있는 지혜)
그러한 지혜가 아닌 광막한 지혜를 인식하면서
상황이 바뀌어 버렸다.
짝지의 행동이 나가 깨어나도록 자극이 되어준다.
이제는 서로가 비슷한 마음으로 느낌으로 서로를 바라보면서
그 옛날 내가 원했던 짝지가 되어가고 있음이 확인된다.
그리고는
지금 비로소 예전에 참았던 이야기들을 한다면서
에전에 했으면 욕먹었을 이야기들을 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지혜는 머리가 아니요
지혜는 가슴도 아니요
지혜는 행동도 아니요
지혜는 원인도 아니요
지혜는 결과도 아니요
지혜는 모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