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식과 수련

고통과의 이별

imita 2006. 7. 7. 19:04

나에게 자유를 가르쳐주신 님께서

만남보다 이별을 먼저 알아라고 하셨다.

30년을 넘게 자유를 찾아 헤메었다.

혼자서 명상을 하고 수련을 하고 대로는 구름위를 걷기도 하였다.

그러나 마음 한 구석은 늘 자유롭지 못함을 느꼈기에

계속 자유를 찾아 다녔다.

 

그러다 크리슈나무르티의 죽음에 대한 명상에 감화를 받아 죽음에 대한 명상을 시작하였고

많은 부분이 자유로워졌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이내 자류롭지 못한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가족에게서 자유롭지 못하였으며

사회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색욕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였다.

 

그래서 더욱 진한 죽음을 찾다가

마음수련을 하게 되었고 많은 경험과 명상에 깊이가 더해졌다.

많은부분이 자유로워졌지만 아직 자유롭지 못함을 알았다.

그리고 죽이고버리는 것 만으로는 자유로워지지 않음을 알았다.

한 예로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서 사라졌다고 해서 그에게서 자유로운 것은 아닌 것과 같이.

 

하여 완전한 이별이라는 것을 하기로 하였지만 그것 또한 이별되지 않는 연속이었다.

생이별은 불가능한 것이었던 것이다.

무작정 띤다고 띠어지지 않는 것이다.

만남이 있으면 만남의 원인이 있고 만남의 원인이 해결되어야 이별이 되는 것이었다.

만남의 원인을 찾아서 이별하고 이별해도 이별되지 않는 것이 또 있었다.

 

지금 살아가고 있는 삶이 이별될 수는 없는 것이다.

모든 것을 다 이별해도 지금 살아있는 나의 삶을 이별할 수는 없는 것이다.

하여 지금 이별되지 않는 이 삶의 흐름을 보기 시작했다.

지금 이별할 수 없이 살아야만 하는 이 삶을 보고 살아가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내가 찾아 헤메던 것이 자유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내가 찾는 것은 자유, 해탈, 이별이 아니라 진정한 사랑, 존중이었던 것이다.

 

지금의 나가 살아야 하는 이유를 알게되니

지금의 나가 존중되게 되었고

지금의 나가 존중되니

지나온 나가 존중 되었으며

지나온 나가 존중되니

지나온 고통의 연속이

지나가야만 하는 길이 되었고

지나가야 하는 길을 가고 있었으니

지나가게 한 고통들이 오히려 나의 안내자였음을 알게 되었고

지나는 길가에서 돌을 던지던 사람들에 대한 미움도 모두 사라지고

지나가는 사람들 또한 사랑스럽게 되었다.

 

세상에 많은 고통들이 있지만

세상에 많은 행복들이 있지만

세상에 고통이 없고 행복하기만 한 사람이 있으랴

세상에 행복이 없고 고통받기만 하는 사람이 있으랴.

세상 아디에 고통만 있는 곳이 있으랴

세상 어디에 행복만 있는 곳이 있으랴

세상 사는 사람들 가슴 속에는

세상의 고통과

세상의 행복이

세상의 크기만큼 존재하는데

세상을 아는 만큼 행복하고

세상을 아는만큼 고통을 아는데

세상을 사랑하는 이 행복한 고통 속에서

세상을 미워하는 이 고통스러운 행복 속에 살아

세상사람 누구나 고통과 행복 속에서 살지

 

지금 나에게 존재하는 것은

지금 내 마음 속에서 일어나 살아 있는 것

무엇이 나서 무엇으로 성장하여 무엇으로 가는 지를 알면

고통이 끝나고 행복이 솟아나지.

 

사랑은 하는 것

행복은 느끼는 것

고통도 느끼는 것

삶은 살아가는 것

 

고통과의 이별은 자신을 존중하면 되는 것

사랑하는 사람 아이미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