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식과 수련

업의 해소와 존중

imita 2006. 7. 6. 07:05

업을 해소함에 있어서 급하게 가려는 것은 사이비로 가는 지름길이다.

업을 해소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방향이다.

 

서울로 가는 방향을 정확하게 잡으면

산을 넘던, 강을 건너던, 들길을 걷던 계속 갈 수 있고, 언젠가는 도달한다.

아니면 정확한 지도를 가지고 자신의 위치를 항상 정확히 파악하면서 가던지.

 

지도도 없고, 방향도 모른 체 길을 간다는 것은 너무나 위험한 것이다.

저쪽으로가면 서울일 것이다.하는 것은 아주 위함하다.

 

그래서 우리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하는 것은 수련에 있어어, 삶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이 수련을 통하여

현실적인 행복을 위한 것인가?

나혼자 잘먹고 잘살자고 하는 것인가?

마음이 편해지기 위한 것인가?

세상에 널리 이롭기 위한 것인가?

하느님을 위한 것인가?

부처님을 위한 것인가?

부모님을 위한 것인가? 등

이루고자 하는 것에 대한 인식이 필요하다.

그래서 자신이 원하는 곳 까지 안내할 안내자를 찾아야한다.

세상을 위한 마음이 없는데, 세상을 위한 수련을 하는 곳에서는 만족할 수 없는 것이다.

 

만일 수련의 목적이

무의식까지 깨끗하게 정화하고자 한다면

자신의 모든 관념을 모조리 끄집어 낼 줄 알아야 하고, (인식할 줄 알아야 하고)

그 관념 속에서 옳고 그름을 분별할 줄 알아야 하고

그 곳에서 바른 견해를 찾을 수 있어야 하고

그 외의 것은 버릴 수 있는 결단력이 있어야 하고

그 결과를 이어갈 수 있는 의지와 노력이 있어야 한다.

 

옳고 그름의 기준은 외부에서 찾는다면

시작은 수월할지라도 나중은 심히 어렵다.

자기의 경험세계에 모든 것이 다들어 있다.

예를 들면 내 속에는

부처의 마음, 마귀의 마음, 포악한 마음, 선량한 마음, 나를 위하는 이기적인 마음

남을 위하는 이타적인 마음, 시기 질투, 증오, 한, 흥 등 모든 것드리 다 들어있다.

이러한 마음으로 인하여 만들어진 결과물들을 찾아서 자신에게 미친 영향을 살펴보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를 알 수 있게되는 것이다.

그렇게 스스로의 판단으로, 물론 조력자가 있으면 빠르지만 결국은 조력자일 수 밖에 없음으로, 가야지만 어느 누구도 원망하지 않으며, 자기 스스로의 반성을 더욱 깊이있게 하게되고 그것이 반복됨으로 인하여 깊은 무의식까지 스스로진입하게 된다.

 

자신의 문제를 주욱 둘러보면 처음에는 하나도튀어나오지 않던 것이 몇일 지나면 수많은 것들이 튀어나오게 된다. 그리고는 몇개의 갈래를 타고 스스로인식하고 이해하고 용서하고화해하면 녹아서 사라진다.

이것을 하나의 프로그램화 시킨 것이 마음수련원에서 하는 수련의 원형인 지구점수련이다.

처음에 시일주인 박영만님이 이 수련이 만들어질 때는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으로 시작했고,

내가 죽으면 가지고 갈 것도 아닌데 다 풀고가자는 의미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지구에서 만든 업 지구로 다 되돌려주자고 만들었다고 한다.

 

살아온 삶 속에서 자신의 기억을 모두 끌어올려봐도 한계가 있다.

순수한 사람은 짧은 시간에도 자신으 무의식으로진입이 가능하지만,

결코 다 찾아지지 않는다.

그러나 자신의 과거의 과거인 부모를 생각하면 무의식의 궤도에 진입한다.

자신의 전부가 부모로부터 왔다는 인식을 하면 그 때부터는 많은 것들이 달라진다.

 

이미 자신이 자신만의자신이 아님을 알것이므로

자신을 완전히 객관화 시킬 수 있으며

자신에 대한 이해와 자신에 대한 용서가 이루어진다.

그리고 모든 것을 존중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왜냐하면 인간이 남을 무시하는 것의 최초의 경험은 대부분 부모형제가족에게 있을 것이다.

무시하는 것도, 무시당하는 것도.

존중 또한 마찬가지이다.

 

이런 과정에서 내면에 있는 경험에 대한 인식을 하나의 존재로 인정해준다면 일은 쉽게 풀린다.

나의 내면의무의식을 풀어나갈때 하나하나를 개체로 인정하고

그 산 삶을 인정하고, 그것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쳐왔는 지 알면, 이해가되면, 용서가되고, 화해가되고, 이별이된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자신을 괴롭히는 자학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남에게 내세울 우월감도 없다는 것이다.

그냥 내면의 세계를 존중하면서 풀어나간다.

억지로 몰아내는 것이 아니라 풀어나가는 것이다.

 

내면을 이렇게 풀어나가면 외부의 세계도 이렇게 풀어나가게 된다.

세상에 욕먹을 인간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 이해가 된다.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를 안다면, 세상의 어리석음을 알 수 있고,

자신의 소중함을 안다면 세상의 소중함을 알게되고

자신의 빛남을 안다면 세상 모든 것의 빛남을 알게 된다.

 

자신에게 불성이, 하느님이 있음으로 세상이 불국토고, 하느님 세상이므로 천국인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어야 내면에 남아 있는 인과의 흐름이 새로운 방향으로 전환이 일어난다.

인과으 흐름을 바꾸는 시작과 끝은 인식의 변화이고

인식의 변화는 곧 존중이다.

 

 

업의 해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해소의 방향이고

그 방향은 존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