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식과 수련

최상의 주문

imita 2009. 1. 29. 08:53

부처님의 말씀에

일체가 고통이라는 말은 들었다.

모든 것이 고통이라는 것이 마음으로 받아들여지던 날

그 날 이전에는 많은 고통과 즐거움들이 있었지만

그 날은 모든 것이 괴롭던 날이었다.

말로는 부처님의 말씀에 애별리고, 원증회고 하면서 모든 것이 고통이라 이야기 하고 놀았지만

그 날은 무척이나 괴로운 상황, 정말로 고통스러운 것이 아닌, 마음이 괴로운 상황이었다.

무언가를 선택, 판단하기가 어려운 그런 마음에 생기는 괴로움이었다.

 

모든 것이 고통이라는 말이 문득 떠오르면서

모든 것이 고통이니

이리해도 고통이요 저리해도 고통이니 마음가는데로 하자.

그리고는 몰락 놓아져버렸다.

모든 것이.

그 순간부터 순간에 충실하면서

숨쉬는 것 마저 행복해졌었다.

고민할 것이 없었고

말에 막힘이 없었다.

 

모든 것이 고통이라는 것이

기독교에서는 원죄라는 의미로 사용된다는 것도 머지 않아 인식되었다.

그리고는 기독교에 대한 편견이 사라져 갔다.

 

그리고 많은 날들이 흘러가면서

일체가 공하다는 말은 많이도 듣고

일체가 허망하다는 말도 많이도 들었다.

 

헌데,

허망하다는 말은 참으로 인생을 허망하게 만들어버리는 것을 알아차린 것은 많은 시간이 지나서였다.

모든 것이 고통이니 못할 것도, 할 것도 없는 꿈이 없는 마치 잃어버린 삶처럼 되어갔다.

허망하다는 말을 제대로이해하지 못해서 많은 세월을 보내버린 것이다.

 

반야심경에 나오는 말들이 대부분 공을 풀어서 설명하고 있다.

색성향미촉법도 없고, 뭐도 없고, 뭐도 없다.

그리고 의지할 것도 얻을 것도 없다.

그러면서 최상의 주문 하나를 남긴다.

 

"아제아제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사바하"

 

주문이니 해석을 하지 않는다는 말도 많고

가세 가세 저 피안의 언덕으로 가세라고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정작 이 주문의 핵심은

나의 어머님에게 들은 적이 있다.

아니 우리 모두는 늘 듣고 있는 내용이다.

 

해낸다. 이겨낸다. 꼭 이루겠다. 등의 말이 곧 주문의 핵심이다.

그리고 도의 근본에서 출발한 유일한 내용이다.

그 다음에 일파만파로 모든 일들이 엮어져 나가는 것이다.

 

본디 마음은 청정무구하여 아무것도 없어나

한 생각 일어난 마음에 구구절절 달라붙는 마음들이 있다.

한 생각 일어난 것은 번뇌가 없다.

구구절절 달라붙은 마음들에는 혼란, 상충이 있고, 선택이 있어야 하며, 이기심과 이타심에서 선택의 기로에서 고통이 만들어진다.

이리하여 만들어진 번뇌들이 허망한 것이다.

허망함으로 고통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한 생각 일어나는 것은 고통이 아니다.

허망한 것도 아니다.

 

배가 고플 때 일어나는 한 생각은 번뇌가 아니다.

그러나 이걸 먹을까? 저걸 먹을까? 누구랑 먹을까? 지금 먹을까? 나중에 먹을까?

하면서 스쳐지나는 생각들은 번뇌다.

여기에

이사람과 이 것을 먹으면 맛도 있고 이런 이익이 있는데

조 사람과 조것을 먹으면, 맛도 없고 손해지만 먹어야만 하는 상황인데

어쩌나, 저저나 고민하는 것은 곧 고통이 된다.

그기에 지나고 나서 후회까지 곁들인다면 미래의 괴로운 일을 만드는 씨앗까지 가지게 된다.

 

우리 삶에 있어서 허망한 것과

번뇌, 사유, 명상의 차이는 그런 것이다.

 

우리 삶의 방향에 있어서도

이와 한가지다.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

가야만 하는 길

우리가 가고 있는 길이 허망한 것이 아니다.

그 길에는 우리 생존의 의미, 소명, 천명이 있고

자연이 있고, 생명이 있는 것이다.

그것을 소중히 할 때 우리는 번뇌가 사라진다.

마치 배고프면 배를 채우기 위하여 행동을 하는 것에서 번뇌가 아니듯이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많은 번뇌 속에서

그 번뇌의 뿌리가 어디인지

그 번뇌를 없애기 위해서는

우리의 본성에서, 진심에서 우러나온 한 시작이 무엇인지를 찾아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이루어나가기 위한 행위의 연속은 번뇌가 아닌 자연, 조화, 질서에 속하게 되는 것이며,

결코 허망한 것이 아니라 실로 소중한 삶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저 세상을 공부하는 것은

이 세상을 버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 세상을 참되게 살고자 하는 까닭이다.

저세상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것은 이 세상의 가벼움, 번뇌를 허망하게 인식하게 하기 위함이다.

번뇌의 허망함을 알고 나면, 결코 이 세상과 저세상이 구분이 없다는 부처님의 말씀이 이해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자신이 곧 하늘의 독생자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게 될 것이다.

 

도인에게는 한 순간의 허망함도 없음이라.

원래 허망함이 없음을 알고 사는 것이라.

 

그 곳에 가는 유일하고 확실한 주문은

지금의 이 곳에서 그 곳에 도착하겠다는 자신의 의지, 다짐만이 유일한 방법이요, 궁극의 방법이다.

그러한 마음이 갖추어졌을 때

화두도, 주문도, 스승도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요.

그러한 마음이 갖추어진 자는 세상 모두를 스승으로 삼을 수 있게된다.

 

함께하는 모든 이들이 친구요 스승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힘든 일을 당했을 때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이겨내겠다는 마음을 먹고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을 찾고, 도움을 청하고

이겨내기 위한 노력을 하는 것이다.

완전히 이겨내기까지 이겨내겠다는 마음을 잊지말아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최상의 주문인 것이다.

그것이 소원을 성취하는 방법인 것이다.

그것이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움직이고

그것이 주변에너지를 움직이고

그것이 하늘을 움직이게 되면

소원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이겨내겠다는 것은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는 주문이요, 소원성취하는 것이라면

저것을 내것으로 하여 세상을 즐겁게 살겠다는 것은

흔히 말하는 소원성취하는 주문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일체 유심조의 마음이 모든 조화를 부린다는 것이다.

중간에 부연설명이 많이 필요하지만 간단하게 말한다면

자신의 한 생각이 일어나 자신을 점하고 세상으로 퍼지면서

세상의 움직임이 자신의 마음과 일치되어가는 것이 일체유심조인 것이다.

 

우리가 흔히 하는

해낸다 하는 마음이

이 세상의 가장 고귀하고, 훌륭하고, 근본적이고, 최종적이며 가장 강력한 주문인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모두 부처라고 하는 존재이기에 가능한 것이다.

원래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되어있기 때문인 것이다.

 

새해 복들 많이 받으시고,

모두 소원성취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사람 행복한 에너지 imita 드림

(나의 소원은 사랑하는 사람 행복한 에너지인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