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위한 사랑노래
나는 늦게 귀가한다.
아이들을 볼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아이들을 보면서 그 나이 또래에 겪어가고 있는 일들이 있음이 보인다.
서로 싸우기도 하고, 일러주기도 하고, 야단치기도 하고, 반항하기도 하고...
그러면서 성장하고 있다.
아이들이 징징거림이 약간 나타난 시점이 꽤 지났다.
질투도 하고 그런다.
아침에 일어나면 아이들 기분이 별로다.
저녁에 아빠와 같이 놀고 잤을 때는 미안하지 않지만
매일 늦게 들어가서 자는 모습을 보는 나에게
아침에 찡찡거리는 모습은
보기 싫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고, 애인하기도 하다.
그래서 늦게 들어갔지만
자는 아이 귀에다 흥얼거렸다.
사랑하는 나의 딸
누가 누가 사랑할까?
엄마, 아빠, 세세, 제제, 싱싱이 사랑하지.
사랑하는 우리 딸
누가 누가 사랑할까?
김해할머니, 빼빼할머니가 사랑하지.
사랑하는 나의 딸 누가 누가 사랑할까?
사촌....., 친척....이 사랑하지.
사랑하는 나의 딸 누가 누가 사랑할까?
저 하늘의 햇님이, 저 하늘의 달님이 사랑하지.
사랑하는 나의 딸 누가 누가 사랑할까?
저하늘의 흘러가는 구름도, 흘러가는 저강물도 바다도 하늘도 사랑하지.
....삼라만상 모두가 사랑하는 나의 딸 사랑하지.
며칠간 비슷비슷한 노래아닌 흥얼거림이 이어지고서는
아이들의 아침이 밝아지고 있다.
서로 밉다고 하더니 지금은 서로 좋아한다고도 하고,
누가누가 사랑할까를
누구누구 사랑할까로 바꿔서 흥얼거리기도 하고,
또
엄마 사랑하는 우리딸
어찌어찌 사랑할까?
말잘듣고, 밥잘먹고, 잠잘자고, ,,
이리이리 사랑하지.
흠 어쨌거나 나의 마음을
이리저리 전달하면서
약간은 세뇌시키기도 하면서
그렇게 성장하는 모습을 바라본다.
며칠 전에는 또 이런 일이 있었다.
밤늦게 집에가니 둘째 딸이 몸에서 열이 펄펄나는체로 자고 있다.
아침에 성질을 낸 것이 마음에 걸려서
자는 아이 귀에다 속삭였다.
사랑하는 나의 딸 아프지 말고 건강하라고.
아침에 아빠가 화내서 미안하다고,
지금은 기억이 다 안나지만 하여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아빠 말 알아듣지 하니까 고개를 끄덕끄덕한다.
으믐, 자면서도 다 듣고 있다.
무의식인지 현의식인지 모르지만 아이에게 하는 말이 그대로 전달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는 몸의 열을 내려가라고 쓰다듬었더니
20분쯤 지난 후에는 약간의 미열만 남기고 모두 사라졌다.
아침에 약간 열이 오르기는 했지만 심하지 않는 정도로 열이 났다.
아이에게 나의 흥얼거림,
내 마음 속의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
아이를 위한 만들어낸 이야기들이
아이들에게는 바로 전달되어버린다.
때론 직접전달되기도 하고
때론 세뇌가 되는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나의 말, 나의 흥얼거림이
아이에게는 직접적으로 전달되고 그것이 생활 속에서 변화되는 아이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물론 이 흥얼거림이 전부는 아니다.
아이를 위한 엄마의 노력, 과자굽기, 홍삼먹이기, 부모교육에서 배운 내용 적용하기 등이
함께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찌되었던
부모의 노력, 어쩌면 아주 작은 노력이
아이에게는 행동의 변화를 만든다는 것이다.
아이가 자는 동안에 부모가 아이의 욕을 한다면 이와는 정반대의 일들이 나타날 것이다.
아이에게 고함과, 성질과 욕설을 전한다면
아이은 그에 상응하는 방향으로 변화가 주어지겠지.
이 것 은 아 이 에 게 만 한 정 되 는 것 은 아 니 었 다.
나의 어머니가 그러하셨고, 나의 아내가 그러했고, 나의 직장상사가 그러했다.
나의 마음 쓴 것과 같은 방향으로 그들의 마음이 움직였다.
결국 나의 마음이 아이를 위한다면
나의 마음이 무엇인가를 위한다면
그것은 나의 마음따라 변화가 일어난다.
나의 사랑하는 아이들이
온 세상의 사랑 받고
온 세상을 사랑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아이들에게 흥얼거린다.